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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의 생일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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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날 태어난 여자아이는 곧 다섯 살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친구의 생일이 있다. 선물을 들고 찾아간 친구의 생일잔치에서 실수로 촛불을 끄고 마는 여자아이.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에 도망쳐 나온 아이는 혼자 심심해하지만, 친구도 강아지 치치도 모두 싫다. 아이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생일에는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어... 하지만 눈만은 꼬옥 내리게 해주세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 녹아있다는 이 작품에서도, 치히로는 많지 않은 글과 생략된 그림만으로도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까지 끄집어내는 그녀만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생일을 기다리는 토토의 마음과 친구의 생일을 망쳐버렸다는 자책감, 그리고 그 실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엄마와 친구들 덕분에 눈처럼 포근한 생일을 맞는 토토를 통해, 우리는 아이의 순수한 감수성과 다시 만나게 된다. 
겨울의 눈은 차가울 것 같으면서도 따뜻함을 전한다. 마치 추위를 덜라고 이불이라도 덮어주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눈 오는 날’의 생일은 춥고 견디기 힘든 계절의 생일이 아니라, 따뜻하고 안온하기 그지없는 계절의 생일이다. 아이의 기분을 나타내는 발랄하고 진한 붓터치와 투명한 원색들로부터, 당황스러움과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표현하는 옅은 모노톤의 거친 붓놀림까지, 이 작품은 보는 이가 아이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특히 멀리서 동네를 바라보는 토토와 길게 옆으로 누운 하늘의 모습에는 쓸쓸한 마음이 한없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역시 치히로는 화해와 평화를 꿈꾼다. 하얀 눈에 대비된 빨간 색의 모자와 장갑은, 아이의 환한 표정과 함께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물씬 불러일으키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이처럼 투명한 수채화의 작가’로 불리며 이와사키 치히로(1918~1974)의 창작그림책(총 6권)이 첫 권이 나온 지 1년 4개월 만에 마침내 완간됐다. 
국내 독자들에겐 「창가의 토토」의 일러스트로 널리 알려진 이와사키 치히로는 평생의 테마를 ‘어린이’로 삼아, 세계의 많은 동화작가와 그림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일본의 대표적인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작은 새가 온 날」「이웃에 온 아이」「비 오는 날 집 보기」「치치가 온 바다」에 이어 소개되는 이번 그림책들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화법과 아름다운 색번짐을 이용해 그림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던 독특한 작품들이다.
사후 30여년만에 국내 소개되는 이번 아트북 시리즈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치히로가 그림에 직접 글을 덧붙여 일본의 至光社를 통해 1년에 1권씩 발표했던 창작그림책이며,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다양한 상상과 해석이 가능한, 요컨대 여백과 사색이 담긴 치히로의 작품 성격이 집약된 대표작들이다. 
이번 그림책들도 언제나 그렇듯, 최소한의 언어를 사용하여 동심의 세계를 단순하면서도 깊이있는 붓놀림으로 펼쳐내고 있다. 스케치 작업 없이 곧장 물에 듬뿍 적신 듯한 붓으로 그려진 그녀의 그림에는 수채화의 맑고 투명함과 함께 수묵화가 주는 여백의 여유와 정겨움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아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라는 점이 미덕으로 꼽히지만, 아울러 그녀의 작품들은 세상의 정화를 소망하며 보다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어른들에게도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린이적 감성’을 절로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다. 
현재 이 그림책들은 영문판을 포함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스웨덴, 그리스, 네델란드, 스페인 등 세계 10여개 나라에 번역 소개되어 그림책의 걸작이란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은 볼로냐 국제도서전에서 그래픽 대상을, 는 1973년 유럽과 일본 간의 국제출판문화교류회에서 최우수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참고로 한국판 역시 원작 특유의 색감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 일본에서 인쇄 제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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